안시성의 역사적 배경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가지고 분석을 하고 있지만 삼국시대 고구려의 안시성이 있던 자리는 아직도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지 지금 만주 지역의 어느 곳에 있었다고 추청 하는 정도입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안시성의 본래 이름은 '안촌홀' 이였다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안시성은 자연적으로 험준한 요새였으며 주변에 병기의 주원료인 철광석 산지였고 곡창지대가 풍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국시대 고구려와 당나라의 경계선 쪽에 위치하여 그 위치가 두나라에게는 매우 중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나라의 황제는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고구려의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을 차례대로 함락시키고 안시성을 공격하지만 당시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주민들의 힘으로 공격으로 막아냈다고 합니다. 당나라는 안시성의 공략에 실패하자 성 앞쪽에 토산을 쌓아 공격했지만 안시성의 군사와 주민들은 토산보다 더 높게 안시성을 높여 그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당나라는 공성 기구까지 동원하여 성벽을 파괴시켰으나 파괴던 성벽에는 안시성의 주민들과 군사들이 목책 쌓아 또 한 번의 당나라의 침략을 막았다고 합니다.
영화 안시성의 이야기
연개소문은 자기의 명령대로 작전에 오지 않은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을 죽이기 위해 안시성 출신 사물을 자객으로 보냅니다. 양만춘은 사물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온 자객인걸 알지만 사물에게 자기의 대장 깃발을 들게 하여 자기의 뒤를 따르게 하지만 양만춘의 부하들은 사물을 그냥 죽이자고 합니다. 양만춘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물에게 자기가 왜 연개소문의 명령을 어기고 지금 여기 안시성을 지키고 있는지 제대로 지켜보라 말합니다. 침공이 시작되고 수성이 여의치 않아 양만춘의 여동생인 백하가 사랑하고 결혼을 약속한 파소는 당나라의 황제를 암살하러 떠나지만 고구려의 신녀 시미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 합니다.
결국 파소의 죽음으로 양만춘의 여동생 백하도 적진으로 뛰어들어 결국 죽음으로 사랑하는 파소 곁으로 떠나게 됩니다. 당나라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기 시작하지만 양만춘의 대비책으로 침공을 막아냅니다. 당나라는 성의 공략이 계속 무산되어 결국 성 앞에 성의 높이보다 더 높게 흙으로 산을 쌓으라 명령합니다.
영화 안시성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어릴 적 역사 교육을 받을 때에는 그냥 고구려 안시성의 성주가 양만춘이라고 단순하게만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작가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어 진짜로 당나라가 성 앞에 토산을 쌓았다는 걸 믿지 못했으나 자료를 찾아보니 진짜로 토산으로 쌓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안시성의 함락이 어렵고 안시성의 방어력이 대단했었는지 정말 놀라웠습니다. 당나라의 황제 이세민이 왜 이렇게 안시성을 공략하려 했는지는 그만큼 안시성의 위치가 요충지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안시성을 뒤에 두고 바로 건안성으로 바로 공격하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적을 뒤에 두고 나아가면 보급로가 차단될 수 있기에 안시성의 공략이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당나라의 토산 밑을 파내어 무너뜨리는 걸로 나오지만 역사자료에는 안시성을 토산 보다 더 높게 쌓아 그 공격을 막아 냈다고 나옵니다. 영화에서 처럼 토산을 무너뜨리거나 토산보다 안시성을 더 높게 쌓았다는 것은 차이가 있지만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상황에 이처럼 방비를 할 수 있게 만든 양만춘의 대비책은 실로 놀랍다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당나라의 군대는 안시성의 함락을 포기하고 돌아가면서 당나라의 황제 이세민의 유언에 다시는 고구려를 침략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길정도로 고구려의 군사력은 대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료에 의하면 고구려가 패망하고 나서야 안시성은 당나라에 의해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시면 우리 선조인 고구려의 개마무사의 위세를 볼 수 있습니다.
말에게도 갑옷을 씌우고 화살이 날아오는 공격에도 주춤하지 않으며 달려 나가는 장면은 처음부터 그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보고 나서라도 기본적으로 영화의 역사 배경을 아시면 한층 그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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