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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 한사람의 울분

대장 김창수의 역사적 실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님의 본명은 김창수이며 선생님의 이름이 김구로 개명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압제를 피해 도망 다니기 위해 이름을 아홉 번 바꿔서 마지막에는 아홉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로 구로 개명을 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만큼 항일 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셨으며 여러 항일운동단체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으로 죽음 당했다는 소식에 그 울분을 삼키며 지내시다가 한 일본인이 자기가 명성황후를 죽인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모습에 그 일본인을 맨손으로 죽여 감옥에 투옥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지만 조선의 왕인 고종의 특사로 사형집행이 정지되고 탈옥하였다..

영화리뷰 2021.04.07

관상 과연 운명은 얼굴에서 나오는가

영화 관상의 역사적 배경과 사실 조선의 위대한 세종대왕의 둘째로 태어난 수양대군은 원래는 진양 대군으로 불러졌다고 합니다. 수양대군으로 고친 사람은 아버지인 세종대왕이었고 고친 이유는 수양대군의 욕망이 강해 절개를 지키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인 문종은 원체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문종의 아들 단종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는데 단종의 나이가 너무 어려 그 왕위가 무척 걱정이 되어 당시 김종서. 황보인이라는 신하들에게 왕위를 지켜달라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본 수양대군은 그 욕망에 결국 반란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 자기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두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의 제7대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영화 관상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졌으며 여기서 ..

영화리뷰 2021.04.06

군함도 조선인들은 지옥에 있었다

군함도 : 하시마 섬 지식백과사전을 보면 군함도라고 불리는 섬의 진짜 이름은 일본어로 하시마라고 하며 그 섬 모양이 일본의 해상 군함과 닮았다 하여 군함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군함도에는 석탄 매장량이 많아 그 당시 석탄 채굴과 탄광을 개발하여 일본의 기업 미쓰비시그룹은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익을 얻는 방법은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여서 조선의 많은 사람들을 군함도의 석탄 채굴에 강제징용을 시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자료에 따르면 그 당시 강제 징용당했던 사람의 수는 약 800명 정도였다고 하지만 그 기록이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당시 노동의 시간은 하루 12시간이며 빛도 볼 수 없는 지하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스에 노출되어 강제 징용되었던 조선인의 사이에서 이 섬은 지..

영화리뷰 2021.04.05

영화 광해의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

실제 광해의 역사적 사실 요약 역사 자료에 의하면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왕으로 나라를 통치한 기간은 15년입니다. 광해군이 세자로 있고 광해군의 아버지인 선조 때 임진왜란 일어나면서 선조는 수도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향했지만 광해군은 평안도 지역을 돌면서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왜군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노력을 했다고 역사 자료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선조가 죽고 왕에 즉위하고 그가 한 일은 대동법이라는 세금제도를 개선하며 당시 명나라와 만주지역의 신흥국가인 후금이라는 나라 사이에서 적절한 외교를 펼쳐 많은 조선의 백성들을 전쟁에서 피 할 수 있게 하였다고 전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는 세력인 서인들에게 의해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

영화리뷰 2021.04.04

태극기 휘날리며 한국전쟁의 아픔

태극기 휘날리며 역사적 배경 6.25 전쟁 즉 한국전쟁은 현대역사의 가장 슬픔의 역사입니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큰 아픔을 다시 겪어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북한이 대한민국 전체를 공산주의로 통일시키기 위해 6월 25일 남쪽으로 무력으로 전쟁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한반도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남한군 62만여 명. 유엔군 16만 명. 중공군 36만 명 이상. 민간인 250만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북한군은 남한군의 마지막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고 들어왔으며 많은 피난민들도 같이 낙동강 방어선의 밑에 있는 부산까지 내려와야 했습니다. 정말 여기서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맥아더 장군님의 인천 상륙 작전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지금은 공산주..

영화리뷰 2021.04.03

신기전 세종의 비밀 병기

신기전의 유래와 영화 배경 자료에 의하면 고려 말기에 최무선이라는 과학자이자 무인이었던 그가 당시 중국의 화약무기를 본 따 만든 무기를 조선 세종 시절에 개량하여 만든 무기며 화약 추진식 화살 무기가 신기전입니다. 신기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기는 조선의 세종 때 1447년에 개량. 발전되어 이름 붙여졌다 할 수 있습니다. 신기전은 소. 중. 대신기전으로 나눠져 있고 각각의 용도에 맞게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각의 용도는 적군의 병력 수와 적군과의 거리에 따라 사용했다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로켓 추진방식으로 화살을 쏟아 기존 활의 사정거리보다 더 멀리에 있는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당시의 최첨단 무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때는 칼이나 화살, 창이 무기의 전부였던 시절이라 굉음에 불을 뿜..

영화리뷰 2021.04.02

역린 나는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

역린의 시대적 배경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많은 암살 위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조의 아버지는 나무상자 속에서 죽은 사도세자였고 사도 세자의 행적을 영조에게 과장되게 말하고 사도 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그 당시의 정치세력인 노론 벽파의 암살 시도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할아버지인 영조가 죽으면 그 뒤를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를 물려받기 때문에 자기들의 정치적 입장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영화에 나오는 정조의 암살 이야기는 암살 세력들이 정조가 머물고 있는 경희궁 존현각이라고 하는 곳까지 들어간 이야기입니다. 암살 세력이 왕이 머물고 있는 궁궐까지 들어간다는 건 내부 세력이 동조했다는 의미이며 역린의 영화 이야기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조는 평소 늦게 까지..

영화리뷰 2021.04.02

세종과 장영실 천문:하늘에 묻는다

장영실 그의 역사적 사실 역사 자료에 의하면 장영실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온 귀화인이지만 어머니는 노비 출신으로 어머니의 출신 때문에 노비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나중에 돼서야 엄청난 업적과 노력으로 아산 장 씨라는 족보에 올랐지만 그의 노후에 대한 행적은 어느 기록에도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장영실의 출신과 배경은 조선 왕조 실록에서 조차 딱 한 줄의 표현으로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주. 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역사를 배웠고 우리 조선왕조의 위대한 세종대왕님의 가장 최측근이고 세종대왕님을 도와 엄청난 업적을 세운 인물을 단 한 줄로 표현하다니 정말 그 당시의 천민을 무시하는 성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

영화리뷰 2021.04.01

안시성 난공불락의 성주 양만춘

안시성의 역사적 배경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가지고 분석을 하고 있지만 삼국시대 고구려의 안시성이 있던 자리는 아직도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지 지금 만주 지역의 어느 곳에 있었다고 추청 하는 정도입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안시성의 본래 이름은 '안촌홀' 이였다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안시성은 자연적으로 험준한 요새였으며 주변에 병기의 주원료인 철광석 산지였고 곡창지대가 풍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국시대 고구려와 당나라의 경계선 쪽에 위치하여 그 위치가 두나라에게는 매우 중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나라의 황제는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고구려의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을 차례대로 함락시키고 안시성을 공격하지만 당시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주민들의 힘으로 ..

영화리뷰 2021.04.01

덕혜옹주 저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요

덕혜옹주의 역사적 실화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이며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광무 황제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고종의 늦은 나이에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고종의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라 그런 건지 고종은 정말 덕혜옹주를 끔찍이 아껴고 유년시절의 덕혜옹주는 정말 꾸밈없이 밝게 자랐습니다. 고종의 덕혜옹주 대한 사랑의 일화로 혼자 외롭게 지낼까 봐 유치원을 만들어 동년배의 어린아이들 5-6명을 함께 다니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이 기울듯 덕혜옹주의 운명도 그리 밝지는 않아 1919년 1월 21일에 고종이 죽음을 맞고 덕혜옹주는 반강제적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 지게 됩니다. 당시 일본은 조선 왕조의 사람들을 일본식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덕혜옹주뿐만 아니라 고종의 다른 자식들까지 일본으로 유..

영화리뷰 2021.03.31